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기존 인물을 합성한 영상편집물) 기술로 여성의 사진을 성착취물로 제작해주는 것이 적발된 단톡방이 있다. 이용자수 22만 명. 작년 출생아 수와 비슷하다. 특정 단톡방이 빙산의 일각일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는 새 생명보다 몇 배는 빠르게 새 성범죄자가 탄생하고 있다. 가장 슬픈 건 내가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N번방 사태 때도, 버닝썬 때도, 딥페이크 단톡방 사건 때도… 이 사회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고, 놀라움 대신 내내 슬프기만 했다.
딥 페이크 기술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 이 기술은 포르노 산업으로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 내 얼굴이 이용될지도, 내 얼굴에 붙은 나머지 몸은 섹스를 하고 있는 전라의 여성일지도 모른다고. 딥페이크 이전에도 ‘일반인 능욕짤’ 같은 이름을 달고, 현실에 있는 여성의 초상으로 성착취물을 만든 범죄는 유구하게 있어왔으므로. 남성이 가진 여성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용인되며 실제 여성의 삶을 침해하며 성장했다. ‘여대생’, ‘직업 여성’ 등 섹슈얼한 표현 하나 없는 단어들은 성 산업에서 적극적을 전유되었고, 많은 여초 직업군이 포르노 카테고리에 빈번히 언급되면서 실제 종사자들의 업무 현장을 위협한다.
이런 사회에서 성욕을 가진 여성으로 사는 것은 거대한 미션이다. 내 몸을 긍정하고 내 욕망에 따라 자기주도적인 섹스를 해보았자 은은하게 깔려있는 불안감은 늘 있었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섹스가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딸감’(자위할 때 보는 콘텐츠나 대상이라는 뜻의 은어)이 되어있으면 어쩌지 하는, 그게 훗날 내 삶을 집어삼켜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섹스 중에는 항상 남성 애인의 핸드폰 위치를 체크하고, 어쩌다 애인과 핸드폰 갤러리라도 보는 날에는 다른 폴더가 궁금해졌다. 나는 그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였지만, 유출되었다고 기사화된 불법 촬영물 속 여성 역시 섹스할 당시에는 깊은 사랑이 분명했을 것이므로. ‘국산야동’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불법 촬영물이며, 아동 청소년 성범죄 가해자의 60% 이상은 지인이다. 친밀한 모든 관계가 언제든지 성착취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해나가면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꼴리는’ 만큼 분노가 일었다.
길에서 변태 안 만나도록 네가 옷차림을 조심해, 섹스할 때 핸드폰 위치 확인하고 애인 조심해, 헤어질 때 애인 심기를 거슬러서 ‘안전이별’에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해… 조심하란 말에 지칠 때로 지쳐있던 여성들에게 이제 얼굴이 어딘가에 드러나는 것을 조심하라고 한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내리고, SNS를 닫고… 사실상 존재하길 조심하라는, 더 심플하게 정리하자면 존재하지 말라는 사회의 명령이다. 이쯤 되면 이 현실이야말로 딥 페이크라고 누군가 말해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성착취물 피해자에게 커다란 연대를 보내며, 누구든 조심할 필요도 방법도 없었다는 것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얼핏 무기력한 마음도 밀려온다. 하지만 내 존엄한 삶은 타인을 피해주지 않는 한 언제나 안전할 권리가 있으며, 앞으로도 이타적이며 성욕 많은 여자로 살겠다고 덤덤히 다짐해본다. 내 권리대로 사랑과 섹스를 하는 것이 투쟁이 된 세상이라도 나는 그렇게 살 생각이다. 존재 자체가 챌린지인 삶에서 더이상 아무것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