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새 작가님의 칼럼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클릭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성생활의 모든 궁금증을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피우다 에디터 [원더]입니다.
이번 주 레터의 주인공은 정한새님입니다.
지난 회차에 이어, 오늘은 바디 포지티브에 대한 한새님의 시선을 담은 글을 전해드립니다.
우리는 ‘내 몸을 긍정하자’는 말을 자주 듣고, 또 때로는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하려 하지만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요? 한새님의 이번 글을 통해 저는 그 의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레터를 통해 피우다 구독자들이 다시금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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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새. 패배한 사랑과 함께 가는 사람. 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서평가, 북튜브/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의 공동 기획자 겸 진행자. 주중에 읽고 쓰고, 주말에는 누워있는다. / j_hansa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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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라는 말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여러 단어가 새로이 나타나고 다시 주목받고 개념화되고 하던 시기에 나왔던 문구였는데 '내 몸을 긍정하자'는 의식이 담긴 문장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내 몸이 뚱뚱하건 마르건, 못생기건, 예쁘건, 장애가 있건 정상성의 범위에 들어서건 있는 그대로 봐주자는 운동(movement)으로서의 함의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구호를 처음 들었을 때 좋은 의미라고 생각했다. 바꿔 말하자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몸을 긍정하는 것은 나에게 밀가루를 끊으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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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은가?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비만으로 살아왔다. 한 살 한 살 쌓이는 나이만큼 비만 지수도 착실하게 올라 초/고도비만으로 살아온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기억이 있는 한, 나는 언제나 뚱뚱하다는 비판과 비난과 손가락질과 걱정과 멸시와 동정을 들어왔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헬스장에서, 길거리에서 '뚱뚱한 몸'을 보는 시선은 일관되게 부정적이었고, 이런 사회에서 이런 시선을 받으며 자란 나역시 내 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었다.
그래 놓고 갑자기 모든 몸은 아름답다느니, 내 몸을 사랑해주자느니 하면 ‘되겠냐?’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내 몸을 긍정하자’와 ‘모든 몸은 아름답다’와 ‘내 몸을 사랑하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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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에 아름다움에 부여하는 가치와 기준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 아이돌 멤버의 외형을 떠올린 다음 내 모습을 떠올리면 당연히 전자가 아름답다. 우리 사회가 (외형적) 아름다움의 가치 기준에 대해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페미니즘 대중화와 상관없이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일종의 절대적 명제이다.
그러면 ‘내 몸을 사랑하자’는 문구는 어떨까. 일단 별로다. 어쩐지 내 몸을 사랑하라는 압박을 받는 느낌이다. 사랑해야 한다면 하는 사람도 나고 받는 사람도 난데, 그럼 내가 나와 알아서 할 테니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삐딱한 마음마저 든다. 심지어 내 ‘몸’을 사랑하라니. 내 몸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나요? 내 몸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내 몸을 사랑하라고 했을 때 내 ‘몸’이란 전신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부위별로 나눠서 말하는 건가요? 발가락에 난 털은 몸에 포함되나요? 오른손 약지에 있는 거스러미는요?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는 제가 미친 사람 같다고요? 여성 몸을 부위별로 토막 내 이마 주름살부터 발뒤꿈치 각질까지 고나리질하던 세상이 절 미친 사람으로 만든 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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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문장에 비하자면 '내 몸을 긍정하자'는 참으로 온건하고 범용성도 높아 보인다. 특히 여기서 사용하는 '긍정'이라는 단어가 ‘내 몸을 좋게 보자’는 것보다는 ‘내 몸이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일단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내가 내 몸이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조차도 혐오한다는 것에 있다.
나는 내 몸이 싫다.
낮은 콧대, 팔뚝에 덜렁거리는, 허벅지에 무겁게 매달려 있는 살, 잡히는 대로 다닥다닥 잡히는 뱃살, 숱이 너무 많아 예뻐 보이는 머리 모양을 할 수 없는 머리칼, 짧고 똥똥한 손가락과 상대적으로 작은 새끼발톱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몸을 이렇게 저렇게 조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망상은 해봐야 비참할 뿐이니 어느 순간 그만뒀지만, 겨울에 딱 한 자리 비어 있는 지하철 좌석에 껴서라도 앉을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몸을 향한 담론도 다양해지고 있다. 저속노화 열풍부터 스위치온 다이어트, '갓생 살기'라는 유행 아래 다양한 영상매체나 SNS에서 운동을 독려하고 건강한 식단을 공유하는 등, 몸 자체를 바꾸자는 내용이 화두이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을 보면 그런 유행이 추구하는 몸은 (그 유행을 만들어 낸 사람의 의도와는 별개일지 몰라도) 결국 마르고 날씬한, 그러면서도 근육이 잘 잡힌 몸이다. 이제 몸은 다른 사람이 관음하는 것에 더해 (탄단지 비율 따져 잘 챙겨먹고 퇴근하고 운동할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경제력 있고 유능하며) '건강한 나'를 드러내는 계급의 위치까지 나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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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에서 내 몸을 긍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 몸을 긍정하라'는 말은, 사회의 책임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너 자신이 ‘노오력’해서 네 몸을 알아서 안아주고 달래주라는 말과 통한다. 하지만 내 몸을 긍정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숫자로 표현하자면 내 월급의 제곱에 제곱을 곱해도 모자란다. 후자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나를 바라보는 나의 내면의 눈은 물론이고, 가족의눈, 직장 동료의 눈, 지인의 눈, 사회의 눈에 더해 세상의 눈을 감겨버리거나 조져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포함한 아주 많은 사람들은 내 몸을 훑어보는 눈과 맞서기보다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포케와 함께 제로 콜라를 마시며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자위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내 몸을 거울에 비추며 흉물스러워하기를 반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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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에게 내 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내 몸을 긍정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이다. ‘예쁘지 않아도,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아’ 따위의 - 결국은 자기 위로로도 들리지 않는 허무한 말을 그만두고 - 내가 사회적 정상성에 맞는 몸을 갖고 싶어 한다는, 나도 끝내주게 예쁘고 아름답고 섹시해지고 싶어 한다는 내 안의 욕망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동시에 끊어야 한다고 매일 생각하지만 절대 끊을 수 없는 초코칩 커피 스콘과 크림 라떼를 먹으러 카페에 가는 내 안의 욕망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매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면 아름답고 예쁘고 화사하고 늙지 않는 사람을 향한 감탄을 시청하며, 불화하는 내 몸과 닭가슴살에 당근을 씹는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몸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저를 사랑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구태여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긍정이 있다면 산다는 것, 거기에 있을 터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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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님의 칼럼,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나의 다양한 욕망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 욕망을 안고 산다는 이야기가 정말 많이 와닿았습니다. 글을 읽으며 내 안에 숨어있던, 혹은 삭제하려 했던 욕망들을 조금 더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으로 피우다의 이벤트 소식을 전하며 오늘의 레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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