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새 작가님의 칼럼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클릭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성생활의 모든 궁금증을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피우다 에디터 [원더]입니다.
때로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지난주는 많은 분들께 위로와 연대가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피우다 또한 예정된 레터를 잠시 멈추고, 가만히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조금 늦은 '당신은 모르는 여자의 섹스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이번 주 레터의 주인공은 정한새님입니다.
지난달 레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질염에 대해 더 궁금해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이번 주 한새님의 글이 마침 그 주제를 이어받아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나리님의 시선이 담긴 레터도 곧 다시 찾아뵐 예정이니, 앞으로의 글도 기대해 주세요.
'당신은 모르는 여자의 섹스 이야기'는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더 풍성한 연결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
|
|
정한새. 패배한 사랑과 함께 가는 사람. 퀴어, 페미니스트, 계약직 노동자. 서평가, 북튜브/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의 공동 기획자 겸 진행자. 주중에 읽고 쓰고, 주말에는 누워있는다. / j_hansae@naver.com |
|
|
🖐️ 잠깐! 뉴스레터를 읽기 전에...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던 성생활에 관한 질문을 익명으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질문을 모아 더욱 알찬 내용의 뉴스레터를 발행하겠습니다.
|
|
|
몇 달 전 질염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질염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단순히 질 분비물이 늘었을 뿐 성교통도 없었고 가렵거나 화끈거리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질 분비물이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그때처럼 몸이 돌아간 건지, 아니면 배란기 때 질 분비물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영향인지 확신이 없기도 했다. 몸이라는 게 워낙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고, 특히 여성 질환 관련해서는 알려진 게 적다 보니 더욱 그랬다. |
|
|
석 달 정도 지나고 나니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란기가 지나도, 달거리가 끝나도, 회사의 성수기가 지나가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아도 분비물이 줄지 않았다. 아프지 않더라도 증상이 일반적이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병이 아니라고 판결(?)이 나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 원장님을 마주하자, 증상을 들은 원장님이 아무래도 질염일 것 같다며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는 며칠 후에 나온다고 해서 일단 질정 처분만 받고 돌아왔다. 참고로 질정은 복용약이 아니라 질 내 삽입하는 약으로, 원장님이 넣어준다. |
|
|
그리고 며칠 후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유레아플라즈마 유레아리티쿰’과 ‘가드넬라균’이 양성이라고 해서 다시 병원에 갔다. 원장님 설명에 따르면 둘 다 질 내 세균인데 특정한 상황에서 증식하면서 질염을 발생시키는 거라고 했다. 약을 처방받고 꾸준히 관리하면 나아질 거라고 했고, 이번에는 항생제와 질정, 두 가지를 처방받았다.
항생제는 독한 약이라 먹는 동안 금주해야 하고, 물을 많이 마셔야 하며, 복용 전후 2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앞의 두 가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게 슬펐다. 식후 세 번 약을 먹는데 앞뒤로 2시간씩이면 사실상 하루에 커피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빨리 낫고 싶어서 열심히 약을 먹고 커피를 참았다.
안타깝게도 2주 후에 다시 한 검사에서도 양성이 나왔다. ‘유레아플라즈마 유레아리티쿰’은 정상 수치로 돌아왔는데 ‘가드넬라균’은 여전히 수치 범위 밖이어서 한 번 더 항생제 처방을 받고 질정을 넣었다. 그리고 또 2주간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다행히도 세 번째에는 ‘가드넬라균’ 수치도 정상 범위로 들어와서 드디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
|
|
청소년기 때만 해도 질 분비물이 많으면 내가 뭔가 잘못했거나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때도 질염이 아니었을까, 싶다). 질 분비물이라는 단어는커녕 가랑이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이름조차 몰랐는데, 이제는 질염인가 보다 하며 병원에 다녀오는 어른이 되었으니 감격적이다. 시간이 지나고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성의 하반신, 옷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에 쉬쉬하던 사회 분위기도 어느 정도 환기된 것 같다. |
|
|
물론 누군가는 질염에 대해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일단 우리나라는 공교육 차원에서 미성년자 성교육에 대단히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성에 관해 필요한 정보는 차단하고 오해와 편견을 부추기는 성차별적인 세태에도 책임이 크다. 걸러지지 못한 성적 컨텐츠는 늘어나고 관련 범죄도 가파르게 증가하는데 누군가는 자신이 질염에 걸렸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
|
|
그럼에도 질염은 아주 많은 사람에게 한 번쯤은 걸리는 감기처럼 왔다가는 병이기도 하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복용하면 낫는다. 아프게 낫는 것도 아니고 감기처럼 자연스레 낫는다. 충격파 치료를 한다거나 째서 고름을 빼야 한다거나 할 것도 없다. 여성 청결제가 어쩌고 성생활이 저쩌고 할 것도 역시 없다(참고로 나는 여성 청결제 극렬반대주의자다). 물론 몸 상태에 따라, 환경에 따라 재발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복용하면 된다. 감기와의 차이가 있다면 질염 검사할 때 돈이 몇만 원씩 든다는 건데, 그건 절대적으로 정부 책임이므로 얼른 질병관리청에 민원을 넣자. |
|
|
작년 12월 3일 불법 계엄 이후 많은 사람이 추운 날씨에도 집회에 참석해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탄핵 인용이 오늘내일 사이에 될 것 같지 않고 우리는 주말마다(때로는 더 자주) 집회에 나가게 되었다. 집회가 길어지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야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내가 질염 이야기 끝에 이것을 덧붙이는 이유는, 찬 바닥에 오래 앉아있으면 질염에 걸리기 쉽다고 말하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우리의 질 좋은 삶을 위해서라도 방한용품을 잘 챙겨가야 한다.
꽉 끼는 옷은 최대한 지양하고 흡습성이 좋은 면 재질의 속옷을 입는 걸 추천한다. 겉옷을 여러 개 겹쳐 입으면 보온에 도움이 된다. 찬 바닥에 바로 앉기보다는 방석에 앉는 게 좋고, 다회용 핫팩을 신문지 같은 것에 돌돌 싸서 방석 위에 올린 뒤 안 쓰는 비닐봉지 같은 것으로 핫팩 올린 방석을 감싸서 앉으면 따뜻하다. 조금 번거롭다 싶어도 한 번 나갈 때 시위 하반신을 장착해 나가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질이 때로는 나를 괴롭게 하고 번거롭게 해도, 질 좋은 삶이 결국 내 삶의 질을 좋게 하므로. |
|
|
한새님의 칼럼,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감기처럼 흔하지만, 잘 이야기되지 않는 질염에 대해 나눠본 오늘의 이야기가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
|
레터를 마무리하기 전에, 구독자님께 한 가지 소식을 전하고 싶어요. 피우다가 장소를 협찬한 퀴어 블랙코미디 단편 영화 <자궁메이트>가 더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기 위해 텀블벅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영화는 “생리 주기가 짧은 친구가 자궁을 바꾸자” 며 던지는 농담에서 시작된 이야기인데요. 시놉시스를 읽는 것만으로도 참신하고 유쾌한 기운이 전해집니다. 함께 공개된 스틸컷 이미지들 또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이고 있는데요~ 혹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지셨다면, 텀블벅 페이지를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소소한 후원이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머리 전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오늘도 구독자님의 하루가 따뜻함으로 채워지길 진심으로 바라며 다음 레터에서도 건강히 만나요! |
|
|
💌
빛과 온기가
당신 곁에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
|
피우다hello@piooda.com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52길 5 (이태원동) 1층 02-796-0698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