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팟캐스터 겸 피우다 고객 곽민지와 피우다의 이야기를 매월 첫째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안녕하세요! 성생활 궁금증을 해결하는 피우다 에디터 [원더]입니다.
피우다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오늘은 피우다 운영에 큰 터닝포인트가 된 경험을 선사한 게스트와 함께해보려합니다!
피우다 고객이자 작가, 팟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곽민지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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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곽민지
방송작가, 에세이스트, 팟캐스터.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미루리 미루리라> 등이 있으며 비혼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를 진행 및 제작하고 있다. 개 김정원의 평생 가족이며 피우다의 오랜 단골 겸 유사시 알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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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째주 금요일마다 곽민지 작가님의 칼럼이 피우다 레터를 물들일 예정입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쑥 빠져들게 되는 쫀쫀한 문체로 유명한 작가님의 글답게
첫 칼럼부터 혼을 쏙 빼놓는 이야기들로 가득한데요~
곽민지 작가님의 이야기는 피우다레터를 통해 계속해서 전해질 예정이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레터를 구독하여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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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뉴스레터를 읽기 전에...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던 성생활에 관한 질문을 익명으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질문을 모아 더욱 알찬 내용의 뉴스레터를 발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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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네 동네에 유명한 섹스토이샵이 있어.”
처음 피우다에 간 것은 5년 전, 남성 친구와 함께였다. 친목 모임에서 만원 이하의 선물 사는 미션이 있는데, ‘누나네 동네에 있는 유명한 섹스토이샵’ 피우다에 해당 제품이 있다는 거였다. 해방촌에 산지 오래되지 않은 때여서 피우다가 섹스토이샵인지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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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살던 당시 돈키호테에서 성생활용품 코너를 간 것을 제외하면 가본 적이 없었다. 돈키호테는 생활잡화점이라 섹스토이샵을 간 것은 아니었고, 성생활용품 코너라 해도 누구나 깔깔대며 들어가서 꺅꺅대고 나오는, 어린 시절 치마 들추던 ‘아이스께끼’ 같은 곳이었다. (사라져야 할 놀이다. 아무리 어린이라도 공공장소에서 동의 없이 치마를 들추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성인이 돼서 대로변에 있는 섹스토이샵(구 해방촌 매장)을 들어가다니, 이것은 사실상 나의 데뷔다. 어찌보면 섹스토이샵에 방문하는 가장 편안한 셋팅이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쇼핑을 도우러 가는 모양새. 구매할 사람은 친구이므로 나는 점원의 관심이나 구매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우연히 거리에서 발견한 무료 전시를 즐기듯 쿨하고 자연스럽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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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간판 덕에 편안해진 마음으로 다가갔지만, 꼴랑 계단 두 개를 내려가는 순간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왼발에 ‘뚝’, 오른발에 ‘딱’. 어딘가 뚝딱거리고 있는 스스로가 느껴졌다. 내가 지금 대낮에 섹스토이샵에 들어가는 거구나! 심호흡을 할 여유도 없이 자동문이, 피우다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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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작은 매장이라 심호흡할 타이밍을 다시 놓쳤다. 나는 내가 지미집(큰 규모감을 촬영하기 위해 크레인 끝에 카메라를 단 촬영장비)에 찍히는 느낌일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어떤 표정을 해도 초근접 세로직캠 모드였다. 나는 여기서 그 어떤 표정도 숨길 수 없으리라. 나를 맞이한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 사장님 역시 내게는 세로직캠으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파스텔톤의 따뜻한 내부 인테리어에 세무사 같은 사장님. 비장하게 들어올 때 상상했던 이미지와 달리 편안한 분위기가 이질적이어서, 나는 안도한 채로 여전히 뚝딱거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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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온 게 티가 나겠지? 친구한테 뭘 살 건지 물어볼까? 그랬다간 친구만큼 가까이 있는 사장님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 같겠지? 그렇다고 사장님한테 악수라도 청할 순 없잖아, 사업 하러 온 미국 사람도 아닌데? 친구놈은 왜 아직도 말이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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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진입 직후 한 대화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화를 기억하기에는 처리해야 할 시각적 정보가 너무 많았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눈으로 훑으면서 동시에 표정관리를 하느라 바빴던 기억 뿐이다. 매장 방문이 처음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한 기억이 나고, 사장님은 편하게 둘러보라고 하셨지만 흰자로 나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색해서 아무거나 집어든 것과 궁금해서 집어든 것을 귀신 같이 구분하고 필요할 때 다가와서 묻지도 않은 설명을 했다. 신기가 있나. 세무사 스타일의 말끔한 차림을 한 무당 같은 섹스토이샵 사장. 나 같은 손님을 3억 명쯤 만난 것 같은 사장님 앞에서 괜한 연기는 무효함을 깨달았다. 마치 목에 커다란 카메라를, 등에는 큰 배낭을 메고 낯선 도시를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의 기분으로, 섹스토이샵 데뷔 손님이라는 정체성만 겨우 주워입은 채 매장을 둘러봤고, 따뜻한 현지 할머니의 안내처럼 무당 같은 세무사 스타일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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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토리스니, 삽입이니, 오르가즘이니 하는 소리를 웃지도 않고 잘도 이야기했다. 아마 지금이라면 AI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뿔테안경을 한 번씩 올리면서, 비문도 없이 명료한 문장으로 자위를 이야기하는 사장님. 세무사보다는 인공지능… 아니 인공자위 연구원 같다는 생각을 했다. (훗날 이 인상은 내가 제작진으로 참여한 방송 섭외로 이어지게 된다. 궁금하다면 본 레터를 구독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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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자위 치기” 이게 된다고?
“이거다!”
그때쯤, 친구가 위시리스트에 있던 상품을 발견했다. 계란과 사이즈도 모양도 똑같은 제품. 부활절 달걀처럼 알록달록한 패키징이긴 했지만, 정말로 계란 그 자체였다. 실제로 ‘텐가 에그’라는 제품이었다. 가격은 7000원. (5년 전 당시 가격 확인 필요*) 만 원 언더인 건 합격인데, 이걸로 뭘 한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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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친구들이 다 남자거든.”
그래서 뭐, 이 계란으로 캐치볼이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불알친구끼리 불알의 증표라도 나눠 갖는 것인가? 인공자위 연구원 겸 무당 같은 사장님은 또 내 눈빛을 귀신 같이 알아보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시작했다. 달걀을 돌려서 열자 슬라임처럼 물컹한 달걀이 나왔다. 사장님은 옆에 있던 유리기둥에 달걀을 모자 씌우듯 씌워서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사용 방법을 설명했다. 저런 동작을 뿔테 안경에 빳빳이 다린 셔츠를 입고 잘도 하시는구나.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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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와…”
저 유리기둥은 대기중인 페니스구나. 사장님은 내가 웃지 않고 ‘우와’ 정도로 위기를 넘기자, 그게 기특했는지 여기 손가락을 넣어봐라, 더 큰 제품도 있다, 뒤집어서 보여드리겠다 하면서 다음 테스트를 했다. 물론 내 기준의 테스트였으리라. 당시 나는 장애물 넘기 선수의 기분으로 나만의 웃음 참기 챌린지를 하는 중이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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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사용법을 설명할 뿐 구매를 권하거나 할인행사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불필요한 웃음은 없되 말투는 다정한 사장님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자위와 섹스토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여기서 뭐라도 사서 나가야만 최종 우승자가 될 것 같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뭘 그렇게 이기고 싶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들어온 이상 뭔가를 사서 나가는 것이 안 사고 나가는 것보다 멋진 여성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은 강박에 사로잡혔다. 특히 나와 같이 온 친구는 이미 피우다를 알고 있고 ‘자위 계란’도 알고 있는데 나만 친구 따라 온 사람으로 남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잘 나가는 아이돌은 다 친구 응원하러 오디션장에 왔다가 데뷔는 지가 했다던데, 그 정도는 못 가더라도 친구 따라온 섹스토이샵에서 뭘 사는 인간의 반열에 오르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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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포부에 비해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위가 어떤 것인지, 이 기구들 중 어떤 친구와 가장 친해지고 싶은지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무당 같은 사장님도 그건 맞히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고 친구를 세워두고 자위 상담을 시작할 용기도 나질 않았다. 수만 가지 고민을 하는 사이 친구는 계산대로 왔고, 나는 얼른 눈 앞에 있는 것을 집어들었다.
‘Safe Love Cl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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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사랑 클럽’! 틴케이스에 콘돔, 핑거돔, 윤활제가 들어있는 키트가 카운터에 비치돼있었다. 이거라면 당장 내가 어떤 마스터베이터(!)인지 몰라도 되고, 친구에게 자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하지 않은 상태로 섹스토이샵 고객이라는 이미지는 구매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실용적이다. 그래, 이 클럽에 가입하자! (실제로 있는 클럽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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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거 하나 주세요.”
사장님, 저는 지지 않았습니다. 꺄르륵 꺄르륵 웃다가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고 나가는 손님과 나를 비교하지 마. 사장님은 모르고 나만 아는 무의미한 싸움에서 이기고, 나는 틴케이스를 땀이 나도록 꼭 쥐고 매장을 나왔다. 훗날 피우다에 자주 상주하는 NPC(비플레이어캐릭터, 게임 내에 설정된 캐릭터)가 되면서 이 생각이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섹스토이샵에서 뭘 산다고 해서 더 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지 않고 나간다고 해도 피우다 구성원을 포함한 그 누구도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내 나라에서 처음 어딘가 발을 내딛은 여행자의 기분이 될 수 있었던 것, 어떤 사회적 가면을 쓰면 좋을지 몰라 이 얼굴 저 얼굴을 갈아끼우다 얼떨결에 뭔가를 집어들고 나온 기분만은 두고 두고 신선했다. 근 몇년간 했던 것 중 가장 이질적이었던 경험이 묘하게 따뜻하고 안락했고, 나는 이 곳을 좋아하게 되리란 걸 ‘세이프 러브 클럽’ 틴케이스를 쥔 손의 감각처럼 꽈악 확신했다.
나무토막처럼 뚝딱뚝딱 어색하게 걸어들어간 그 날의 피우다에서, 뭔가가 피어난 게 확실하다. 그건 단순히 성적 호기심도 아니고, 다정한 동네 가게를 찾은 기쁨도 아닌 무엇이었다. 나는 그게 뭔지 조금 더 알고 싶어서, 그 후로 피우다를 드나드는 수상한 손님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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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다와 작가님이 만나 서로가 성장했듯
작가님의 글이 여러분을
더 나은 세계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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